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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은 모든 개별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 때문에 나타나는 한 국가의 전체적인 경제 현상에 대해 분석하며, 이를 통해 국민소득, 물가, 실업, 환율, 국제수지 등 실물경제의 전반을 측정할 수 있다. 기업 부문에서, 기업은 다른 기업과 중간재(intermediate goods)를, 그리고 가계 부문에서 가계들은 채권, 주식, 토지 등과 같은 자산을 각각 사고판다. 이러한 거래는 사고파는 것을 합산하면 0이 되므로 국민경제 순환모형에서는 나타내지 않는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의 결정요인과 이러한 변수들 간의 상호 관련성, 국민소득의 변화를 설명하는 경제 성장이론, 그리고 단기적으로 실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경기변동이론을 연구함으로써 총체적이면서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서술한다. 경제학은 거시경제학이 미시경제학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유는 개별 경제주체나 시장의 미시적인 의사결정을 집계하는 이론이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의 수준이 미시경제학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은 크게 봤을 때, 시장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고전학파와 시장은 불안정하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케인즈학파로 나뉜다. 
고전 경제학은 경제 변동을 관찰하여 가치 이론 (즉, 가격 이론)을 정립하였다. 퍼티는 통상적인 가격을 설명하기 위해 시장 가격과 자연 가격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경제 성장과 발전에 관해 설명하고자 하였고 일정부분의 성과를 보였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중세 사회로부터 자본주의의 발현에 이르기까지의 사회 변화와 산업혁명의 결과 등 "장엄한 변동"에 대해 설명하였다. 또한 개인 각자의 이윤 추구가 어떻게 이러한 사회 구성의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시장 가격은 일시적인 수많은 원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변동하므로 이를 추상적인 단계로 이론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자연 가격은 규칙적이며 항구적인 지점을 나타낸다. 그들은 여러 요인에 의해 흔들리는 시장 가격은 결국 중력에 끌리는 물체처럼 자연 가격에 근접한다고 보았다.
케인즈 학파의 주장은 소위 통화주의자들과 많은 논쟁을 겪었다. 케인스의 이론은 거시경제적 흐름이 각 개인들의 미시적 행동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과정을 잠재 생산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보는 18세기 후반 이후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관점과는 달리, 케인스는 (특히 불황기에) 경제를 이끌어 가는 요소로서 상품에 대한 총수요를 강조했다. 케인스는 금리를 낮출 경우, 투자가 활성화되며, 소비가 촉진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중앙은행의 원칙적인 역할은 다양한 통화정책을 바탕으로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케인스 경제학은 여러 경제학자가 방임주의의 실패로 인한 것으로 여기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출처 : 위키백과)

2. 케인스 남작 존 메이너드 케인스

케인스 남작 존 메이너드 케인스(영: John Maynard Keynes, 1st Baron Keynes of Tilton in the Country of Sussex, CB, 1883년 6월 5일 ~ 1946년 4월 21일)는 거시경제학과 경제 정책 분야에서 기존의 이론과 관습들을 변화시킨 영국 경제학의 대표자이다. 경제학에 관한 케인스의 초기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 문제에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고용 및 생산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에 관하여 종래의 경제이론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케인스는 1930년대에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흔히 일반이론이라고 불리는 책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기존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시장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유효수요이론을 제시하였다. 케인스의 이론들은 케인스 경제학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거시경제학파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케인스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세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완전고용을 실현·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보완책(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 및 이에 입각한 정책, 그 기반을 형성하는 사상의 개혁을 '케인스 혁명'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후엔 선진 서양 국가들은 케인스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후에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그의 추종자들로 인해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케인스의 이론을 채택하게 된다. 이전의 학설들을 토대로 하여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창시해, 경기후퇴와 불황에 대해서 재정정책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케인스학파의 영향력이 감소했지만 정부의 개입을 촉구한다는 측면에서 케인스학파는 관료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의 위치에 있었으며, 금융 위기 사태와 함께 신자유주의 노선이 쇠퇴하면서 케인스 경제학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다. 흔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케인스의 이론에 입각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뉴딜 정책과 케인스의 이론은 사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나왔을 뿐 초기에 상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케인스 경제학은 거시경제에서 불확정성, 유동성 선호, 역사적 과정 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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