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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귀스트 콩트, 앙리 드 생시몽

오귀스트 콩트는 에꼴 폴리테크니크(당시의 엘리트 기술학교)를 그만둔 후 당시의 저명한 연구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앙리 드 생시몽과 교류하였으며, 그와 함께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론보다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에 더 비중을 두는 생시몽과 갈등하였으며 결국 결별하였다.

그는 ‘인류교’를 만들고 스스로 사제가 되었다. 즉, 종교의 대체물로서 실증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이전과 매우 대비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생시몽 유사 종교적 속성을 비난하였으며 그러한 이유로 생시몽과 결별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학문 내에서도 모순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였으나 그가 사회학을 창시하고 후대의 많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콩트의 사회학은 여러 가지 과학 중에서도 특히 생물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기체에 대한 생물학적인 연구가 사회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회학은 근본적으로 유기체적인 사회조직에 관한 연구로서, 사회조직이라는 이 연구 대상은 유기체가 나뉠 수 없는 것처럼 결코 나뉠 수 없고 부분에 대한 연구는 전체의 맥락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2. 자연적 실험

그는 인위적 실험 대신 자연적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콩트는 자연적 실험에 대해 “현상의 규칙적인 과정이 일정한 방식으로 간섭받을 때 언제나 이루어진다.”라고 쓰고 있다. 자연적 실험의 대표적인 예는 생리학의 병리적 현상 관찰처럼 사회적 병리 현상의 관찰, 즉 사회적 일탈 현상의 관찰을 들 수 있다. “사회의 전제조건에 관한 연구로 질서에 대한 관심이며 따라서 ‘인간의 존재 조건’간의 조화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사회의 ‘진정한’ 구성요소를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보았다. 그가 개인이 아닌 가족을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로 본 것은 가족이 ‘사회유기체의 다양한 특성들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사회학적 사실들에 대한 인과적인 연구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 인과 관계들을 통해서 사회의 궁극적인 속성을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성원 간에 언어와 종교 같은 공통된 지적 관념과 도덕성이 존재함으로써 통합을 이루는 기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들이 사회분화 현상을 상쇄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보았다. 콩트는 과학적 방법론인 실험을 사회학적인 방법론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실험이라는 인위적인 방법은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 사회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콩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사회물리학자들 역시 병리학적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회의 정상적 과정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3. 신학적, 형이상항적, 실증적 단계

그는 신학적, 형이상학적, 실증적 단계로 인간의 지식이 진보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단계는 사회의 진보 단계처럼 진화적으로 진행된다. 즉, 각 단계는 뛰어넘을 수 없고,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조건을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콩트에 따르면 사회학은 바로 마지막 단계인 실증적 단계의 최고 정점에 선 학문이다. 콩트에게 사회학의 목적은 추상적인 이론적 원칙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단 사회학이 이론과학으로서 잘 정립되고 나면 그 법칙들은 사회 세계를 개선하는 도구나 수단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사회의 조직과 변동에 관한 법칙은 다양한 새로운 사회적 제도들을 창출하는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다. 콩트는 지식의 삼단계법칙, 과학의 위계론을 『실증철학강의』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창안한 ‘사회물리학’의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과학에는 위계가 있으며 총체적인 성격의 과학은 하부과학의 발전을 통해 발전한다고 말한다. 콩트는 단순히 지식의 진보만이 모든 진보의 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중요하게 여긴 또 다른 계기는 바로 인구이다. 당시에 인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멜서스 식의 인식이었다. 즉, '인구의 증가가 인류의 불행을 불러올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것은 인구의 증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콩트의 사회정학에서 중요한 점은 사회의 통합과 질서에 관련된 법칙, 조건에 관한 것이다. 그는 사회의 하부구조들이 단순한 상태에서 좀 더 정교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이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경향은 사회기능의 분리를 가져오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종합적, 일반적 정신을 소멸, 제한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의 각 기관은 점점 더 전문화, 분화되지만, 동시에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통합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콩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회학적인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려 하였고 이것을 실증주의라고 불렀다. 실증주의라는 단어는 현대에 와서 경험주의로 오독되는 경우가 많은데 콩트의 실증주의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는 조야한 경험주의를 비판하면서 “모든 이론이 관찰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면, 모든 현상도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이 주창하는 실증주의가 단순히 경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법칙의 발견이라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현실을 관찰하는 방법론임을 말하고 있다. 과거의 사회학에 남아있던 신학적, 형이상학적 잔재를 청산하고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사회학을 창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콩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믿음은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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